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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2.24
2023.07.01 (Sat)
지금까지 감상한 영화들 중 가장 어려웠다. 우선 대사 자체에 메타포가 상당히 많고 문학적이라 스토리의 전개를 매끄럽게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창동 특유의 실제적으로 롱테이크 위주로 가져기는 연출이 집중하기에 다소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이창동 감독의 작품 중에는 이전작들과 다르게 BGM이 꽤 삽입되는 등 가장 간장감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큰 주제는 현대인의 분노, 그리고 창작자와 창작품의 관계로 보여진다. 세 주연의 배경에서 나타나는 환경차이와 계급갈등, 불확실과 오해 등의 테마가 내재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너무나도 많은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열어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개인적 해석을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해미의 존재는 이상을 뜻하는 것 같다. 해미는 돈이 없어도 팬터마임을 배우고, 여행을 가며 삶의 의미를 구하려고 하는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청년이다. 그리고 벤의 존재는 서민들이 자격지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부유한 사람이다. 벤은 겉보기에 잘못이 없고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벤의 삶과 태도가 자신도 모르게 종수에게 위화감을 조성했을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분노들은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의 벽(벤)이 이상(해미)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터져버린 것일수도 있다. 영화에서 종수는 소설가로 나오며 영화 중간에서부터 소설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 종수의 미스테리들이 풀리기 시작한다. 누군지 모르겠던 전화는 엄마였고, 아빠의 재판은 종결됐으며 송아지를 팔았다. 벤을 살인자로 확신했고 고양이를 찾는 이 모든 것이 종수가 홀로 생각한 플롯이 아니었을까? 현실의 종수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종수 내면에서 바라던 것들이고, 그것들을 본인 식대로 소설과 상상으로 해결했을 것이라는 게 나의 해석이다.